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9-08-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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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 치바그룹1.jpg | 조회수 | 2,957 |
일본 생활클럽 치바그룹이 원주에 오다
일본 생활클럽 치바그룹이 오다 지난 7월 10일에 생활클럽 치바그룹이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를 방문했다. 치바그룹의 ‘바람의마을’에서 7명, ‘무지개마을’에서 5명, ‘워커즈연합’에서 1명, ‘비누마을’에서 1명, ‘유니버셜네트워크 치바’에서 1명이 방문했다. 양측의 대표자들이 인사를 하고 이승현 사무국장이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이하 원주네트워크) 회원 조직의 활동을 소개했다. 이어서 생활클럽 치바그룹을 구성하는 단체들이 자신들의 활동을 소개했다. 치바그룹의 다양한 형태의 단체를 보며 ‘이런 게 진짜 협동의마을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날의 마지막 일정은 토요 농가맛집에서 진행한 환영 교류회였다. 활발한 교류를 위해 치바그룹 구성원과 네트워크 조합원 단체가 서로 섞여 앉았다. 식사가 시작되자 원주네트워크에서 준비한 ‘1~4차 바람의마을 방문 및 연수회’ 사진을 담은 영상을 재생했다. 원주네트워크 소속 서지혜 선생님께서 정성스럽게 준비한 작품이었다. 이어서 바람의마을에서 보낸 교류 20주년 기념 영상이 나왔다. 넓은 식당 안이 허전하고 서먹할 수 있었지만, 영상이 나오고 노래가 흘러나오면서 금세 화목하고 친근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 다음 날, 여태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지 못한 것 같다며 원주네트워크 사무국과 치바그룹이 함께 하는 저녁식사 자리를 마련했다. 사무국 소속인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자리라 사실 조금 당황했다. 그래도 ‘이럴 때 이야기해봐야겠다’는 마음으로 자리에 참석했다. 식사를 할 때 전날과 달리 치바그룹 사람들과 섞여 앉지 못해 대화를 나누지 못했지만 대신 자기소개 시간이 마련되었다. 긴장되기 시작했다. ‘인사만 일본어로 해볼까?’ ‘아니 소개까지 일본어로 해볼까?’ 많은 생각이 오고갔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하지만 너무 떨려서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뭔가 인상적인 말을 하고 싶었는데, 결국 한다는 말이 내 나이였다. 일본 방문단이 리액션도 크게 하고 박수도 쳐줬지만 겨우 그 말밖에 못한 게 후회가 됐다. 사무국 직원들의 소개가 모두 끝나고 치바그룹 사람들의 소개와 소감을 말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그분들이 느끼고 배운 것을 말하는데 나는 크게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는 걸 보고 오히려 내가 더 배운 것 같다. 나는 장일순 선생님의 생명사상을 학습을 통해 배우는 지식으로만 생각을 했는데, 치바그룹 사람들은 생명사상에 감명 받고 그것에 큰 의미를 두는 것을 보면서 가까이에 있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던 내가 부끄럽게 느껴졌다.
다른 나라의 사회적경제 저녁식사가 끝나고 이어진 2차 자리에서 사무국 직원들과 치바그룹 사람들이 섞여 앉아 서로 교류하고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다. 내가 과연 소통 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을 많이 했는데 손짓, 표정으로 대화하고 그것도 힘들면 ‘파파고’라는 번역 앱을 이용해서 이야기 하니 어렵지 않았다. 이때 내가 참 편안한 세상을 살고 있음을 느꼈다. 같은 테이블에 앉아서 대화하던 일본인들도 신기해했다. 스시를 좋아하냐는 질문에 나는 약간 오버하며 “오이시!”라고 외쳤는데 그 반응을 보고 질문하신 분들이 더 좋아하셨다.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으니 농담으로 치바에 자리 만들어 놓을 테니 오라는 스카우트 제의를 하셨다. 웃으며 지나쳤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한국이 아닌 일본 치바에서 생활하는 나의 모습을 상상했다. 나와 비슷한 사회적경제 일을 하는 다른 나라 분들이라 그런지 금방 정이 들었다. 덕분에 이날 만남은 큰 추억이 되었다. 나중에 이들을 만나면 반가움을 숨기지 않고 표현해야겠다. 앞으로도 원주네트워크와 해외 사회적경제 단체의 교류가 계속되길 바란다. 한국 원주 방문 보고서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의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2015년이었을 겁니다. 갑자기, 김영주 선생님으로부터 이케다 이사장을 방문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고, 나리타 공항으로 마중을 나간 것이 원주 여러분과의 교제의 시작이었던 것 같습니다. 김영주 선생님은 바람의 마을 사업을 견학하고, 향후 급속하게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한국에서 협동조합이 주체가 되는 복지사업을 일으켜 발전시키기 위해 바람의 마을을 모델로 삼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바람의 마을 연수를 기획하여 방문하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당시, 저는 원주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알지 못했으며, 또한 80세를 넘은 고령의 선생님이 혼자 오셔서 돌연 그러한 제안을 하시는 것을 보며 좀 어렵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2016년 5월에 19명, 2017년 4월에 17명, 2017년 11월에 15명, 2018년 3월에 19명, 70명이 좀 넘는 분들이 바람의 마을 연수로 방문했고, 2018년 4월에는 이케다 이사장님이 원주시에 초대되어 강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깊고 넓은 관계가 이뤄진 것에 대해 김영주 선생님께 정말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작년에 이케다 이사장님과 동행하고, 올해는 생활클럽 치바그룹의 멤버들과 방문하여, 원주의 활동을 보고, 들으며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1993년에 협동조합의 성지라고 불리우는 스페인의 몬드라곤을 방문했던 적이 있습니다만, 그 때는 유럽 전체를 걸쳐 급성장하는 협동조합 가전 메이커인 파고르에 놀랐었습니다. 지역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스페인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협동조합에 의한 경제력으로 유럽을 지배하려고 하는 기세를 느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파고르는 쇠퇴의 위기를 맞고 있다고 합니다. 원주는 전혀 다릅니다. 원주는 위기에 직면했던 사람들의 연결에서 필연적으로 협동조합사상이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원주시라고 하는 지역에서 깊고 짙은 협동조합을 만들고 있습니다. 지학순 주교, 장일순 선생이라는 뛰어난 사회운동가의 존재가 있기에 형성되어 온 협동조합사상을 바탕으로 생명, 사람과 사람의 관계, 자연과의 공생을 소중히 여기는 생각들이 삶에 뿌리내리고 있는 지역이기에 협동조합이 발전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신용협동조합이 다른 협동조합을 지원하면서 확장되어 왔지만, 지금은 신용협동조합에 지원을 받았던 협동조합이 거꾸로 신용협동조합을 지탱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협동조합간 협동에 의한 경제활동기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야 말로 계속될 수 있는 운동이기도 하다는 것을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한국에서는 2012년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되었고, 협동조합이 붐(?)인 것 같습니다. 한국 각지에서 1년여 동안 1만여명이 협동조합이 무엇인지를 배우기 위해 원주를 방문한다고 합니다. 1980년대에는 한국의 많은 사람들이 일본 협동조합을 배우러 왔다고 하는데, 지금은, 일본의 협동조합이 힘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다시 우리들이 한국에서, 원주에서 배우지 않으면 안됩니다. 지금까지, 우리들과 원주의 여러분들을 이어주신 김영주 선생님, 김기섭 선생님, 이승현 사무국장, 천혜란 팀장님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미요시 타다스(三好 規) 사회복지법인 생활클럽 바람의 마을 전무이사 저는 전쟁을 모릅니다. 전쟁을 통한 빈곤도 잘 모릅니다. 협동조합도 잘 모릅니다. 그런 속에서 처음으로 방문한 협동조합의 도시 원주, 그리고 무위당 기념관에서 들었던 두 분의 이야기, 협동조합에 의한 힘의 중요함, 무위당 선생님의 위대함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공감이 되었던 부분은, 「共生是道」입니다. 제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드라마 “스쿨워즈”에서 다키자와 라는 선생님이 “one for all, all for one”이라는 말을 합니다. 그리고 3개월전 신입직원들 앞에서 제가 했던 메시지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원주에 인도되어 내가 이곳에 서 있는 것이 어쩌면 운명이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니 감동과 흥분이 좀처럼 가라앉질 않았습니다. 사회복지법인에 들어온 지 16년째입니다만, 아직도 모체인 생협에 대해서는 깊이 알지 못했습니다. 생협이 뭐지? 협동조합이 뭐지? 이제야 그 답이 조금은 보이는 것 같습니다. 이시이 코우지(石井康治) 사회복지법인 생활클럽 바람의 마을
글 박가람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 사진 원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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